서울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명태균 정치 컨설턴트
[선데이타임즈=권영출 기자]한국 정치의 뒤안길에서 불쑥 솟아난 명태균이 자신을 규정한 말, ‘나는 정치 기술자다’는 기존 정치학 교과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공식 직함도, 선출직 경험도 없는 인물이 어떻게 여의도 권력의 핵심부에 침투했을까?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고객’들이 하나같이 명문대 출신 엘리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전화번호부 사업과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머에서 권력 브로커로-명태균의 변신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 시스템의 구조적 공백과 엘리트 교육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정치 해부학 보고서’에 가깝다. 그를 삼국지 책사들과 비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세에는 기존 질서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쌓인다. 이때 비로소 ‘야생의 지혜’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고난이 빚은 통찰력의 기원, 東家食 西家宿의 시련
명태균의 정치적 감각은 어린 시절 겪은 극한의 시련에서 시작되었다. 부모를 일찍 잃고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마치 삼국지 유비가 짚신을 삼아 팔며, 고생한 것과 같은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형편에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반장을 여러 번 역임할 정도로 담임교사의 신뢰를 받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머리는 좋지만, 흙수저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이 준 긍정적 선물이 아니었을까?
이는 유비가 어려운 처지에서도 관우, 장비와 같은 호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과 유사한 천성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명태균은 “끼니를 떼우기 위해 도움을 구할 때,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웠다”고 고백했다.
그와 대화하고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심리’을 관통하는 촌철살인의 명언을 자주 들었다. 대학에서 배운 심리학이 아니라, 시장과 사람들의 땀냄새 속에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심리적 매커니즘을 잡아챘던 것이다.
마치 개미나 뱀과 같은 미물이 인간이 듣지 못하는 저주파를 감지하고, 지진의 징후를 먼저 파악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한국인의 DNA 속에 살아 숨 쉬는 감성적 성향을 읽어내는 능력을 체득했던 것으로 느꼈다.
▲3차원적 독서법,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통찰력
삼국지의 제갈량이 와룡강에서 10년간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듯이, 명태균 역시 힘들고 시간 보내기 어려운 시절 다양한 책을 탐독했다. 하지만 그의 독서법은 쓰여진 데로 읽는 평면적 독서를 넘어선 독창적인 것이었다.
“늘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해답을 찾고자 노력했다”는 그의 고백은 제갈량의 경전학습 방식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명태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이 주장하는 논지의 배경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비교 분석하는 3차원적 독서법을 실천했다.
특히 역사서, 그중에서도 근현대사를 깊이 있게 읽으면서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지닌다”는 통찰을 얻었다고 한다. 이는 사마의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장기적 전략을 수립한 것과 맥이 통한다. 조금 과한 어조로 표현한다면, ‘변화와 불변의 변증법적 사고’를 부지불식간에 학습한 것이다.
명태균의 세계관을 형성한 핵심은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였다. 그는 “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반복적 패턴으로 움직이는 역사,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세 축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관점을 정립했다.
이러한 통찰력은 그가 정치 컨설팅에서 보여준 예측 능력의 근간이 되었다. 인간의 본성과 역사의 패턴은 읽되, 기술과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능력에 나타난다. 2014년 안상수 전 창원시장을 돕기 위해 시작한 정치 참여도 이러한 사고의 토대 위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는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에 감동하여 출사한 동기와 유사하지만, 명태균은 깊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상황 판단이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평론가가 아닌 정치 기술자
‘사마의(司馬懿)’식 현실주의 명태균이 자신을 ‘정치 평론가’와 구별하여 ‘정치 기술자’라고 정의하는 대목에서 사마의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정치 평론가는 이미 만들어진 자동차를 보고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정치 기술자는 그 자동차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마의의 장기적 계획 수립 능력과 현실 적응력을 연상시킨다. 사마의가 조조, 조비, 조예 3대를 섬기며 점진적으로 권력을 축적했듯이, 명태균 역시 여러 정치인들과의 관계에서 ‘고객’이라는 냉철한 시각을 유지하며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자주 “유명 정치인들도 단지 명태균에게는 고객일 뿐이다. 정치인들을 신격화시키면 국민은 노예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마의가 보여준 현실주의적 정치관과 일맥상통한다. 감정이나 충성심보다는 냉철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현실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명태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탁월한 기억력이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검찰과의 대질신문에서 빛을 발한 대목이다. 제갈량이 천문학, 지리학, 공학 등 실용 학문을 습득하여 종합적 역량을 발휘했듯이, 명태균 역시 데이터 분석, 여론조사, 선거 전략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을 보여준다.
▲정치권력의 ‘블랙홀’, 현대판 ‘환관 정치’의 구조적 분석
명태균이 제기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정보 매개 권력’의 비대화 현상이다.
그는 과거 군주제의 환관과 현재 언론의 역할을 비교하며 권력 구조의 본질적 문제를 지적했다.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는 환관들이 십상시였다면, 지금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언론이 현대의 십상시”라는 그의 분석은 단순한 언론 비판을 넘어선다고 느꼈다.
이는 삼국지 가후(賈詡)가 보여준 권력 구조에 대한 냉철한 분석력을 연상케 했다. 가후가 여러 군벌을 거치며 각 세력의 권력 메커니즘을 꿰뚫어 봤듯이, 명태균은 현대 정치에서 실질적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확히 포착했다. 삼국지 순욱이 조조에게 “현명한 군주는 간신을 멀리하고 충신을 가까이 한다”고 조언했던 것처럼, 명태균도 “권력에 사람 씀은, 옷과 같이 하셔라”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기존 정치 엘리트에 대한 구조적 비판
명태균의 정치 분석에서 주목할 점은, 기존 정치 엘리트들의 현실 인식 부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SKY 출신 정치인들이 그에게 의존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정치 엘리트 양성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낸다고 본 것이다. 이는 삼국지에서 원소가 명문 출신 참모들을 거느리고도 결정적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학벌과 스펙은 뛰어나지만, 실제 정치 현실을 읽는 능력은 부족한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었다. 그는 “진짜 여론과 만들어진 여론을 구별해야 한다”며 현재 정치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삼국지 제갈량이 보여준 정보의 정확성과 판단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관점과 일치한다. 제갈량이 첩보와 정보 수집을 체계화했듯이, 현대 정치에서도 정확한 여론 파악과 정보의 투명성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명태균 현상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정치 기술의 양면성이다. 같은 기술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도,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투명하고 공정한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우지 못하는 실용적 지혜와 통합적 사고력
지난 10여 년간 명태균과 만난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대부분 전문가이며, 소위 SKY 출신들이었다. 자신의 전공분야에서는 탁월했던 인물들이 왜 명태균에게 매료되었을까? 이는 현대 교육의 한계와 진정한 지혜의 본질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SKY 엘리트들의 학문적 지식이 ‘수직적이고 전문화’였다면, 명태균의 지혜는 수평적이고 통합적이었다. 그의 3차원적 독서법과 ‘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단편적 지식을 넘어 현실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만들어냈다.
그의 말처럼, “세월이 바뀌어도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어릴 때 배웠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전문 지식은 풍부하지만, 정치적 현실 감각이 부족한 엘리트들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삼국지의 순욱이 조조에게 인재 등용과 정치적 판단에 대한 조언을 한 것과 같은 역할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의 입장에서, 현대 교육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지점을 보게 되었다. 삼국지에서 탁월성을 보인 책사들은 하나같이 ‘다면적 학습,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이론과 실무의 결합, 개성을 살리는 교육, 장기적 안목의 교육’의 대가였다. 명태균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배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고난과 시련을 통한 인간 이해력의 배양’이다. 명태균이 끼니를 떼우기 위해 도움을 구하면서 체득한, “인간을 읽는 능력”은 학교나 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실용적 지혜였다.
명태균의 정치적 감각은 단순한 학습이 아닌 생존을 위한 체화된 경험에서 나왔다. 이는 제갈량의 이론적 완벽함을 넘어, 실제 현실에서 작동하는 실용적 지혜의 차원이다. 그가 “개미나 뱀과 같은 미물이 저주파를 감지하듯 인간의 감성을 읽어낸다”고 표현한 것은, 이러한 체화된 학습의 결과물이다.
SKY 출신 엘리트들이 그에게 의지했던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이론적 지식을 가져도, 현실 정치에서 작동하는 인간관계의 미묘함과 대중 심리의 역학을, 연구실에서 체험하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 생태계의 불편한 진실
명태균 현상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한국 정치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표로 기능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삼국지에서 동탁의 전횡이 한나라 말기의 부패한 정치 구조를 상징했듯이, 명태균이라는 존재 자체가 현재 정치 시스템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말기 환자를 치료하는 무면허 의사”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 정치 생태계의 병리적 상황을 증명한다. 정상적인 정치 시스템이라면 ‘무면허 의사’가 설 자리가 없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존재가 필요한 상황 자체가 시스템의 실패를 말해준다.
SKY 출신 정치인들이 명태균에게 의존했다는 사실은 현재 엘리트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지식의 양은 많지만 현실 적용 능력이 부족한 ‘학습된 무력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삼국지에서 원소가 명문 출신의 참모들을 거느리고도 패배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명태균의 3차원적 독서법과 생존을 통해 체득한 인간 이해력이 대학원에서 배운 정치학 이론보다 현실에서 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는 것은, 현재 교육 시스템이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